[애니] 슬램덩크 더 퍼스트
술은 원래 무기력한 오늘의 나보다 다음 날의 나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메자이 스택은 죽으면 반이 줄지만, 술 스택은 무기력을 더욱 중첩시킨다.
그렇게 일어난 주말은 지난 날을 후회하게 만든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움직이기 싫어진다.
이것저것을 해야지 라고 마음 먹었던 일들은 무기력과 귀찮음을 핑계로 이불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하나님은 왜 7일 동안 하루만 쉬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맞이하는 주말의 끝.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전날 술기운에 봤던 슬램덩크 관련 유투브가 생각났다.
귀찮은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한 뒤 영화관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씻고 나서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더라.
이제 슬램덩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처음 슬램덩크를 접한 것은 친척집에서의 비디오. 첨언하자면 그땐 비디오를 빌려서 볼 시절이었다.
드래곤볼, 12지전자, 까꿍 같은 종류의 만화를 즐겨보던 시기여서 그닥 재미있긴 했지만 흥미는...
대충 완결까지 보기는 했다. 기억을 잘 나지 않지만...
바람의 검심, 원피스, 샤먼킹을 지나 강철의 연금술사까지.
슬램덩크와는 전혀 다른 장르물들을 보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자주 가던 인터넷 사이트에 자꾸 슬램덩크에 관한 글이 올라 오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 전에도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접하니 또 궁금해지기에, 다시 완독.
진짜 슬램덩크 덕후처럼 능남전의 누구, 해남전의 누구 이런 것은 몰라도 대충 흐름까지는 알고 있는 상태.
이것은 나의 배경이고, 애니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농구경기 씬의 작화는 3D 였는데, 처음은 거부감이 좀 들긴 했지만,
역동적인 움직임과 씬 표현에 그런 거부감과 어색함은 금새 사라졌다.
분명 한정된 러닝타임 내에 슬램덩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산왕전을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표현해야 했나 하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특히 전반전은 정대만의 활약을 끝으로 순식 간에 지나가 아쉬움을 남겼다.
오프닝 그리고 경기 중 간간히 나오는 송태섭의 과거 이야기.
"농구가 하고 싶어요"의 주인공인 정대만의 서사 이외에 슬랭덩크에는 인물의 과거 서사가 그리 많지 않다.
이상하게 다른 만화들처럼 궁금하지 않다.
흔히 소년물에서 나오는 플롯. 전투 중간에 과거 이야기가 나오며, 이 놈은 이런 일을 겪어서 이렇게 됐어.
슬램덩크를 볼 때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경기를 하고 어떻게 이겨내는가.
거기서 주는 감동이 있는데, 이번 극장판에서는 부족했다.
송태섭이 왜 오키나와에서 가와나가로 왔고, 농구를 계속했는지 그리고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중간에 흑화한 정대만를 제외하면, 다른 멤버들은 농구를 계속 해온 사람들이다. 강백호도 제외하고...
극장판을 통해 슬램덩크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송태섭의 서사가 감동의 포인트 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원작을 봐버린 아재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내 이름을 말해봐",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에는 거짓이 아니라구요",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등의 명대사, 명장면이 난무하는 산왕전을 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생략 또는 흘러가는 장면으로 표현한 것은 정말 아쉬웠다.
귀멸의 칼날에서 렌고쿠와 아카자의 결투는 얼마나 극적으로 그리지 않았나.
저런 장면들을 적절하게 극적으로 그렸다면 나는 영화관에서 눈물을 흘렸을 지 모른다.
스포츠란 한정된 시간 내에 이어지는 서사가 주는 감동이 핵심이라 생각한다.
중간 나오는 송태섭의 과거 이야기는 스포츠의 감동을 오히려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애니이지만..
결과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경기장에서의 모습들이 더욱 더 묘사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 경기 장면들은 매우 멋있고 실감나게 표현했기에 더욱 그렇다.
다음 영화관에서 볼 것은 스즈메의 문단속.